지장보살과 염라대왕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이 없어질 때 까지
성불을 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운 고집불통의 보살이고,
염라대왕은 명부시왕(저승에서 지옥에 오는 중생들의
심판을 맡은 열명의왕)중에 다섯 번 째 왕이다.
사람이 죽으면 이 명부시왕에게 심판을 받게 되는데
처음 7일간은 제1 진광대왕에게 눈이 지은 죄를 심판받고,
두번째 7일간은 제2 초강대왕에게 귀가 지은 죄를,
세번째 7일간은 제3 송제대왕에게 코가 지은 죄를,
네번째 7일간은 제4 오관대왕에게 혀가 지은 죄를,
다섯번째 7일간은 제5 염라대왕에게 몸이 지은 죄를,
여섯번째 7일간은 제6 변성대왕에게 뜻이 지은 죄를,
일곱번째 7일간은 제7 태산대왕에게 속마음으로
지은 죄를, 심판 받는다.
이렇게 49일간 자기가 지은 죄를 심판받고
죄의 경중에 따라서 다음 생의 갈 곳이 정해 진다.
하여 사람이 죽으면 이 기간 동안 망자를 위해
공덕을 짓기 위해 49제를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10분의 명부왕이 있는데
유독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이유는 뭘까?
죽은 뒤에 몸이 지은 죄를 심판하는 분이
바로 이 분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몸으로 짓는 죄가 가장 많기 때문이리라.
그럼 7왕만 있으면 되지 나머지 세 왕은 또 무엇인가?
생존시 지은 죄의 경중과 형량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
49일 이후 100일간은 제8 평등대왕이,
100일 이후 일년간은 제9 도시대왕이,
1년 이후에는 제10 전륜대왕이 최종적으로
명부의 형량을 가린다.
요즘으로 말하면 고등법원인 대법원의
항소 상고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염라대왕은 명부에 직장을 갖고 계신 분이고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을 보류하고
자원해서 지옥에 가 있으므로 중생은 자기가 지은 업보를 따라
생을 받아 윤회하고 보살은 자기가 세운 원력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가 구원할 중생이 있는 곳에 찾아 간다고 하는데
지장보살이 아무도 가기를 꺼려하는 지옥에 간 것은
지장보살의 원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을 부를 때 원력 크기로는
으뜸인 대원본존(大願本尊)지장보살이라고 하며
49제를 지낼 때도 지장보살에게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한다.
"지장보살"에서 지장이란 무엇인가?
"지장"이란 우리가 볼 수 없는 숨겨진 땅을 말한다.
땅이란 허공의 반대이며 허공은 터짐이니
당연히 땅이란 막힘인 것이다.
막힘이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감각과 대상이 서로 부딪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눈을 막는 것은 색이고,
귀를 막는 것은 소리며,
코를 막는 것은 냄새고,
혀를 막는 것은 맛이며,
몸을 막는 것은 촉감인 것이고,
감정을 막는 것은 깊은 뜻이다.
이 여섯 가지 막힘이 곧 땅인 것이다.
줄여서 말하면 보이고,들리고, 냄새나고,맛나고,만져지고,
의미가 느껴지는 것으로 이것이 땅의 실체인 것이다.
땅의 실체란 곧 감각이니 감각은 대상을 느끼는
역할을 하고 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리라.
즉 '보인다'는 감각은
눈과 색이 만난 것이라는 말인데
이 두 가지는 서로 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색을 '있는 것(有)'이라고 한다면
눈은 '없는 것(無)'이라고 해야 한다.
세상이 나타나는 것은 여섯 가지 육진(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뜻)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것은 여섯 가지 육근(눈, 귀, 코,
혀, 몸, 의미)에 의지 한다.
육진은 세상의 물질이 드러내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몸에서도 이 육진이 드러나고
그로 하여금 몸이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감각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 육근에는 육진이 없다.
꿈에서도 육진은 실감나게 나타나지만
그것을 느끼는 감각은 몸이 아니고 정신이 아닌가.
곧 정신이 감각능력인 것이므로 색도 없고
소리도 없으면 냄새 등등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귀에 소리가 본래부터 있다면
다시 말해 날 때부터 귓속에서 천둥소리가 저절로 들린다면
과연 세상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산들바람소리처럼 작은 소리를...
그리고 조용하다는 것을 맛볼 수는 있겠는가.
세상의 소리가 없다 해도 귀 자체에서 항상 시끄러울 터인데....
눈도 만약 날 때부터 자체에 붉은 색이 있다면
세상이 온통 붉은 세상으로 보이게 될 것이며
흰 색은 절대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색을 분별하여 확연하게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눈에는 아무런 색깔도 본래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눈은 색을 보지만 자체에는 색이 없고
귀도 소리를 듣지만 귀 자체에는 소리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육진과 육근의 대립적인 차이다.
그러므로 육진은 있는 것이고 육근은 없는 것이며
육진은 사라지는 것이고 육근은 공한 것이므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여기서 무엇으로 나를 삼을 것인가.
육진은 드러난 것이므로 현상(現像)이라고 하며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근은 드러난 것을 느끼는 것이고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니 '숨겨져 있는 것(藏)'이다.
즉 몸은 현(現)이고 감각은 장(藏)이니
어느 것을 '나(我)'로 삼을 것이냐는 말이다.
당연히 '숨겨진 감각' 즉 '숨겨진 땅(地藏)'은
공하므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장보살 명호를 올바르게 수지독송(受持讀誦)하면
본래부터 일체중생에게 생사가 이미 초월 되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도 있고 보살도 있는 것으로 보고
열심히 불려대면 죽어가는 자를 살려주고 지옥에서
고생하는 자를 구해준다고 착각한다.
심지어 승려들 까지도....
[참고]
지장보살의 최초의 명칭은
풍백이라는 이름으로 바람을 관장하며,
영혼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위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
부처는 태양의 에너지에서,
관세음보살은 달의 에너지,
문수보살은 안개,
산신은 땅을 관장하며,
약사여래, 라고도 한다.
물을 관장하는 신은 해수관음보살 또는 용왕이라 하며,
화엄성중, 기타 신장은 우뢰와 비를 관장하는
신들이 각기 자신의 일들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