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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35편

★염라 閻羅★™ 2009. 11. 14. 20:38

       

      공수래공수거
      어릴 적 내 인생의 한 토막의 얘기다.

      누구나 소실 적 아련한 추억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지긋 지긋한 가난 때문에 먹은 게 없어서 배속에서는 구라파전쟁이 잦을 때
      고놈의 가난이 웬수라 그저 공부를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야망보다는
      그저 동물적 본능으로 굶주린 뱃속을 뭐던지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다.
      울 초딩시절에는 가난한 나라라고 미국의 원조로 일주일 한번씩 건빵이 나왔는데

      내 기억으로 선생님은 우리에게 공정하게 나눠줄 건빵 일부를 남겨놓고서

      수업시간에 공부 잘하는 친구에게 건빵을 나눠주곤 했었는데

      어떤 친구는 날마다 건빵 받는 재미에 푹빠져 밤낮으로 공부를 취미로 해서

      그 당시 천재소리를 들으며 우쭐되던 친구도 있었다.

       

      난 고향이 아랫녁 낙도의 섬으로 겨울이면 해우(김) 을 주업으로 하였는데

      우리 밥상에서 매일 먹는 김을 먹으려면 동트기전 새벽부터 서둘러야 완성된다

      그래서 장남으로 태어 난 나는 일손이 모자라 새벽이 되면 곤히 단잠을 깨우는
      부모님 목소리가 꼭 저승사자 목소리 같이 들렸고 싫었다.

      비록 일어 나기는 싫었지만 힘겹게 일어나 옆에 곤히 잠자는 동생들을 바라 볼 때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책임감은 있어서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일어나

      칼날 같은 찬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집안 일을 거둘었다.

      하지만 언제나 잠이 모자라 '학교에 다녀와서는 이 맛나는 단잠을

      꼭 자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일어 날 때마다 굳게 다짐을 하였지만

      내 동생 코에 코 풍선 부풀어 오르다 어느 한계에 이르러서 톡하고 터지는 풍선과 같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 생각은 오간데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 그 당시 유행했던 타잔놀이..오징어놀이..나이 따먹기 놀이에

      푹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어 놀았던 어린시절이다.
      공수래공수거
      어느 날 마을 광장에서 어둠이 짙게 깔리도록 놀다가

      아쉬움으로 집에 향하는데 옆집 형이 웟돔집에 테레비젼이 들어 왔다며

      저녁밥 일찍 먹고 같이 보러 가자는 제안을 하였다.
      외지에서 불어오는 문명에 조금은 테레비젼에 관해 정보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우리 동네에 테레비젼이 들어왔다는 소리에 내심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우리집 형편에 테레비젼은 꿈도 못꿨지만 윗돔에 거시기네 것이라 해도
      우리집 것 마냥 즐거웠고 기뻐 했었다.

      난 게눈 감추듯 밥을 후다닥 먹고 약속했던 장소에 모여서

      웟돔 거시기네 집으로 향해 갔다.

      도착하니 이미 소문을 듣고 온 동네분들이 다 모여 방안이 가득차서

      테레비젼이 보이질 않았지만 우리들이 누군가?

      서로 의기투합하여 요리조리 해집고 들어가 그토록 보고싶어한

      문명생활에 위대한 첫발을 그곳에서 맞이하고 말았다.

       

      조그마한 사각박스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소리가 나오다니

      그 당시 라디오에서 최고의 인기 연재 드라마는 <마루치와 아라치>였는데
      우리 마을에 테레비젼이 들어오면서 부터는 마루치 아라치가

      파란해골 13호를 죽이든 살리든 자기집에 데려가 부지깽이로 눈깔을 지지든 볶든

      그저 관심 밖에 인물이 되어 버렸고
      오직 우리들의 관심사는 테레비젼에서 나오는 코 크고
      적의 무리를 아슬아슬하게 물리치는 근육질 사나이 빤스입은 타잔이 최고였다.
      또 내가 남자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타잔의 애인 제인을 엄청 짝사랑 했었는데

      비록 눈으로만 훔쳐봤지만 난 난생처음 남의 간네를 간음하는

      잘못을 그때 범했다는 것을 솔직히 자인한다.
      "타잔아 미안하구나, 날 용서해다오"ㅋㅋ
      공수래공수거
      우리들은 밤이면 밤마다 테레비젼의 신세계에 점점 빠져만 들어갔고
      구구단은 못 외워도 매일 테레비에 나오는 프로그램은 줄줄 외우고 다녔으며

      만화에 영화에 그 당시 최고의 사극(아씨)를 안보고는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그 당시 모든 분들도 다 그랬을 터~"
      테레비젼이 있는 그 거시기네 집은 밤이 되면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였고
      앞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저녁 밥을 아예 굶고서라도 가야만 시청이 가능했는데
      조금 게을러 늦게라도 가면 테레비젼 화면은커녕 테레비젼 소리조차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미 중독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테레비젼 소리라도 듣고픈 마음으로

      그 집 뒤안으로 지체 없이 돌아가 테레비젼이 놓여있는 뒤 방문 옆에 찰싹 달라붙어
      소리만이라도 듣고 집에오면 그날은 행복해 하였다.

      그렇지만 그 곳에도 엄연히 서열이 있는 법.
      힘센 형아들은 앞에서 듣고 우리 같이 힘없는 조무래기들은
      뒤편에 줄서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테레비젼 소리에 온 청각을 곤두세우고

      엿듣고 하였는데, 어린 나이에도 약간은 속으로 불평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또 그 집에는 우리들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테레비젼 덕분에 잘못을 하여도 동네 형아들이 면죄부를 주었고
      하물며 힘센 형아들도 한 자리를 부탁하며 그 에게 뇌물성 오다마 사탕을

      물래 주는 것을 여러번 목격하였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 있었고 그 동생에게 잘못 보였다간

      “형 우리 테레비젼 보지말고 가!”

      이런 개망신 당할까봐 잘못을 해도 이래저래 혼내지도 못하고
      그저 꼬랑지 감춘 개쉐끼 마냥 얌전하게 지냈던 기억이 솔직히 있었다.
      공수래공수거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조무래기들을 통솔하고 리더한 옆집 형아가 나름대로 수준 높은 제안을 내 놓았다.
      우리들도 편안하게 테레비젼을 맘껏 볼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걸 말이다.
      우리들은 형의 말에 반신반의 하면서 나름데로 진지하게 열변을 토한지라

      듣고만 있었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형의 말에 따르자고 해 모두 찬성을 하였고
      나 역시도 테레비젼 시청에 불편함을 느꼈는지라 찬성을 하고
      그 대열에 기꺼히 합류하였다.
      테레비젼을 맘껏 그리고 편안하게 쉽게 볼 수 있다는데 왜 내개 반대 하겠는가?
      우리들은 형아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바로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바로 다음날 우리들은 나와 민족을 위해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테레비젼 시청 원정길에 나섰다.
      공수래공수거
      젤 처음으로 원정 갔던 곳이 우리 마을 고개 너머에 있는

      우리 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변전소관사였다.

      변전소에는 직원이 상주하므로 관사가 있었는데 그곳에 테레비젼 안테나를

      학교를 오고가며 이 형아가 보았고 그곳에 가면 볼 수 있을꺼라 믿었던 것이다.

      약속 한 날에 일찍 저녁을 먹고서 우리들은 사장께에 모여 변전소관사로 향했다.
      관사에 도착하여 대문을 두들기니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살았는데
      형아가 대표로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예쁜 얼굴만큼이나 예쁜 마음씨를 갖은

      관사사모님이 우리들을 친절하게 받아주었고
      간식까지 대접 받아가면서 정말 테레비젼을

      원껏 시청하였다.

      그래서 우린 밤이면 변전소관사로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 당시 일요일 밤에 외화를 많이 하였는데 난 총쏘는 서부극 보단

      로맨스그레이한 사랑을 주제로 한 외화가 솔직히 더 맘에 와 닿았다.

      어린 나이에도 외화를 보고나면 사랑의 대상을 꿈꾸고 찾기 마련인데

      난 엉뚱하게도 관사사모님에게 더 관심이 많았으니 '이걸 오짤꼬...'
      사모님의 모습은 한마디로 이지적이었고 아름다웠다.
      난 속으로 내가 이 담에 어른이 되면 저 사모님과 같이 예쁘고

      마음씨 고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해서 알콩달콩 잘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늘 상상속으로 하면서 테레비젼을 보면서도 나의 두 눈과 마음은  

      온통 사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고 훔쳐 보았던 것이다.
      공수래공수거
      그런데 벼룩도 낯짝이 있는 법.

      어린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에도 날마다 빈손으로 가기가 미안하였고
      그래서 각자 알아서 자기 집에 있는 부식재료 즉(김/고구마/마늘/양파/생선/등등)들을
      각자 알아서 몰래 조금씩 가져오기로 하였다.
      내 사랑 사모님은 역시나 이것들을 부담스럽다며 처음에는 정중히 사양하더니
      며칠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아니 당연하게 받아 주었지만

      난 솔직히 날마다 몰래 가져 오는 것도 부담이었다.

      어쨌든 그 덕에 우린 테레비젼을 조금은 떳떳하게 원껏 시청하였고
      내 사랑 여자를 매일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꿈같은  많은 날들이 가고

      어느 날 이쁜 사모님이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였다.
      "야, 얘들아! 느그들이 맨날 가져온 저것들이 창고에 가득해서 이제는 썩어 문질어진다.
      이제 고것들 고만 가져오고 가져오려면 뭐 다른 것으로 가져오면 안되겠니?!"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억장이 무너진다고 할까..

      시발, 어린 나이에 삶의회의와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의미를 잃은 순간이었다.

      비록 처음엔 테레비젼시청 땜에 온 게 시발이 되었지만

      언젠가 부턴 사모님이 여자로 보였고 그 뽀얀 얼국과 가끔 연분칠한 짙은 화장냄새도 좋았고

      무엇보다 여자로 보여서 속으로 깊이 사모했었는데~~~~
      "오메, 시방 저 여인이 뭔 말을 했당가!"
      지그미, 살을 에워오는 강추위에도 테레비젼시청보다는
      일편단심 저 여인을 사모한 맘으로 눈으로 느끼는 사랑을 하려고
      때로는 긴긴 섣달에 비몽사몽 몽정까지를 하며

      열렬히 사모하였는데 말이다.

       

      그 곱고 곱기만 한 사모님의 모습이 실망으로 돌아선 순간

      난 한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져 음유론자가 되어 한동안 지내곤 하였다.

      그 아픔으로 테레비젼보기를 돌 같이 하고 여자보기도 돌 같이 해야 하는데
      얼마 못가 그 놈의 타잔빤스와.. 눈으로 간음한 타잔의 애인과...

      변전소의 사모님을 그리워하며 테레비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어린시절을 보냈다.

       

      閻羅印 
      공수래공수거